낙타가 사막으로 간 까닭은?

Thar Desert, India 2_Digital Print_2013

낙타가 사막으로 간 까닭은?

낙타가 사막으로  까닭은?”
김미루 Miru Kim
2014.03.27 – 04.29

낙타가 사막으로 까닭은?”

김미루는 2012년 4월, “The Pig That Therefore I Am” 트렁크갤러리 전으로 우리들을 놀라게 했었다. 인간존재들이 자신도 모르게 구축된 어떤 관념들에 과감히 도전한 ‘김미루’. 그녀가 ‘마이에미 아트페어’에서 펼친 “돼지와의 동침 3박4일” 퍼포먼스를 통해 ‘더럽다’라는 관념, 그 관념해체를 위해 스스로의 몸으로, 행동으로, 아트로의 본보기를 보여주었다. 퍼포먼스로, 셀프촬영으로 행동하는 삶으로 자신의 고정 관념부터 깨려는 작가, 그녀는 작업과정이 작품임을 말하려 한다. 아니 몸을 던져 말한다. 몸의 경험으로 철학을 했다. 자신만의 논리를 펴면서…

 

2014년 김미루는 또 다른 주제에 도전한다. “낙타가 사막으로 간 까닭은? 이란 질문에서 출발하는 그녀는 오지, 사막을 찾아갔다. 그녀는 모슬렘문화권이 벗은 여자의 몸을 터부시 하는 그 곳 임에도 불구하고 누드가 아닌 Naked 된 몸으로 자기만의 미학적 논리를 펴낸다. 또 다른 충격적 도전을 하려한다. 깊은 사막 한가운데서 유목민 앞에 그녀는 몸을 벗고 마주한다. 그 상황은 엄청나다. 그 같은 파격적 상황은 당연히 긴장감이 돌았고, 두려움도 컷 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가슴에서 나는 쿵쾅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온 몸이 후들거리는 것을 느꼈지만 천연스럽게 대처했다고 한다. 그들도 ”아트“라고 하니, 모든 것을 다 이해 하는 척 하더라고 말하며, 그녀는 지금도 천연스럽다. 자기가 펴야할 논리를 위해 몸으로 헌신하는 것, 그녀는 당당하다.

 

김미루는 지금 요르단에 거주하고 있다. 사막 속 한 부족이 사는 작은 마을이다. 마을을 벗어나 큰 바위가 있는 그 어떤 곳, 그녀가 “노마드적 삶 적응 프로젝트”를 펼쳐내고 있는 곳이다. 21세기적 과제인 느리게, 불편하게, 깨끗하지 않게, 같은 반 관념과제들을 스스로 실천해 내겠다는 “사막 프로젝트”가 그녀의 작업이다. 그녀의 말로는 불편함이나 더럽다는 생각은 한 일주일이면 적응되고, 그 다시 일주일이면 순응되어, 또 다른 일주일부터는 나름 그 곳의 장점들을 발견하게 되어, 익숙해진다고 한다.

 

높은 바위 위로 올라가니 모든 통신망이 터졌고, 그래서 임대료가 필요 없는 그 곳은 사무실과 작업실로 적절했으며, 그녀의 주거지 까지도 짚 차로 2분 가량 달려가야 유목민 마을로부터 동떨어져 아무 간섭 없이 한갓지게 지낼 수 있는 곳이라고 말 한다. 그 곳은 물이 없어 밥 먹고 난 그릇 설거지를 모래로 처리해야 하는 곳이고, 목욕, 대소변 문제도 자연에 맡기는데 참 편리하다고 말 한다. 그런 모습의 규모로 살림 차리기에는 약간의 자본이 필요했지만, 그 밖의 생활비는 그 어떤 곳 보다 저렴해서 좋다고 말하는 그는 지금은 즐기는 단계라고 한다. 아니 작업하기, 표현하기, 철학하기가 다 함께 이루어지기에 매우 적절한 작업공간이며 그 만족도가 높다고 말하기도 한다.

미루는 사막을 갔다. 아니, 문명을 떠나, 오지라 할 수 있는 그 곳에서 자신의 고정관념을 해체해 보겠다는 도전의 선택지가 그 사막이었다고 한다. 바로 ‘더럽다’, ‘비 문명 적 이다’‘미지라서 두렵다’에 도전하는 그녀, 사막과 인간과 낙타가 함께하는 그 곳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을 얻겠다고 몸부림이다. 사막에게, 낙타에게 질문하는 것이 곧 그녀의 작업이고 작품이었던 것 이다.

 

-트렁크갤러리 대표 박영숙-

 

 

The Camel’s Way 

 

Miru Kim took us by surprise with her last exhibition at Trunk Gallery, in April 2012, titled The Pig That Therefore I Am. Based on the judgment that human beings are surrounded by layers of concepts, built up unbeknown to them and that prevent them from living creatively, Kim boldly challenges these fixed concepts and notions: this is central to her work.  At Art Basel Miami in 2011, Kim used the work I Like Pigs and Pigs Like Me (104 hours) to dismantle the notion of “dirtiness” forced upon pigs through her own body, actions and art. Through this performance, and the images she took of it herself, Kim demonstrated how the process of actually living together with pigs and breaking her own stereotypes was itself a work of art. Kim is an artist who throws her entire physical self into dismantling stereotypes. She uses her physical experiences to develop a philosophical logic.

 

In 2014, Kim has taken on another theme: The Camel’s Way begins with the question, “Why did the came go to the desert?” and uses it as a starting point for exploring deserts and remote places. Attempting to develop an aesthetic using a naked body, rather than a nude, in the Muslim cultural sphere, where female nakedness is strictly taboo, inevitably creates a shocking impression. The exceptional process of relying on the help of a single nomad in the heart of the desert must have been hugely stressful and frightening; it was into this environment that Kim launched her own body. She devoted herself to the development of her own logic. Hearing her tell how she feigned boldness and went through with the work in a natural way, despite her pounding heart and trembling body, filled me with respect.

 

Kim currently lives in Jordan, in a small desert village inhabited by a single tribe. At a large rock outside the village, she is conducting the “nomadic life adaptation project.” This appears to be a “life project” aimed at embodying the 21st-century topics of slowness, inconvenience and uncleanness. According to Kim, it takes a week to adapt to the inconvenience and another to accommodate the environment, discover its advantages and get used to it. When she climbed to the top of a high rock, she found that all mobile signals were available there, making it appropriate for use as a rent-free office and studio. The place where she lived is around 30 minutes away by jeep, in the middle of the desert. Water is a previous commodity there. She cleans her dishes after eating with sand and uses unique local methods to take care of washing herself and attending to the call of nature. This is the core of the “nomadic life adaptation project” chosen by a member of 21st-century civilisation. Setting up this life required a small amount of capital, while other living expenses, Kim says, are lower than elsewhere, which is good. It is a highly suitable working space for combining expression and philosophy.

 

Kim has gone to the desert. This is the place she has chosen for the challenge of leaving civilisation and deconstructing her stereotypes in the so-called back of beyond. This place, where desert, human and camel come together; the place where Kim has set herself against the “dirty” and the “uncivilised;” is at once a question and a place that she has found in order to obtain answers. Questioning the desert, questioning the camel – these are the questions that constitute both her working process and her artworks.  It seems Kim has found her answers. Her own notes reveal what they are.

 

-Trunkgallery Director Park, Young Sook -

 

[작가노트]

낙타는 왜 하필 사막으로 가서 살게 되었을까? 사막은 가혹하다. 모든 생물로부터 생명을 빼앗는다. 낙타는 지구상에 가장 가혹한 곳에서 살 수 있도록 진화되었다. 왜? 낙타는 평화를 원했기 때문이다. 낙타는 무기가 없다. 타자와 싸울 욕망이 없다. 그래서 쫓기고 쫓기는 수밖에 없었다. 쫓기다 보니 침략자들이 더 이상 침략할 수 없는 곳에 이를 수밖에 없었다. 그곳이 바로 사막이었다. 그 여로에서 낙타는 사막이라는 각박한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몸을 만들어갔다. 낙타처럼 거대한 포유류가 사막에서 산다는 것은 하나의 기적이다. 낙타는 결국 자기가 원하던 평화를 찾은 것이다. 사막에는 그를 괴롭히는 사자도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인간이 사막으로 따라 들어왔다. 지구의 모든 환경을 정복하고 싶어하는 인간이라는 동물이 사막으로 온 것이다. 인간은 사막처럼 뜨겁고 메마른 곳에서 살 수가 없다. 그래서 이 낙타라는 사막의 동물을 길들이게 된 것이다. 인간의 삶의 영역이 넓어진 것이다. 인간은 사막에서 공동체를 형성하고 물과 초원을 찾아 다녔다. 인간에게 영양과 교통과 안식처를 제공하는 낙타와 더불어. 그러나 낙타야말로 인간을 동반자로 선택한 주체일지도 모르겠다. 사막에서 평화를 발견하는 그들의 예지를 우리 인간에게 가르쳐주기 위해서!

낙타의 평화를 우리 인간은 배워야 한다!

 

[Artist's Note]

Why did camels go into the desert? The desert is unrelenting. It drains the life out of the living. Camels evolved to live in the most abandoned areas on earth, because they wanted to be in peace. They had no weapons. They had no desire to fight. They kept going away and away, into a place where no predators could attack them, and that was the desert. On the way, they adapted their bodies to the environment. No other large mammals can survive in the desert like they can. So it worked, they found peace at last. No lions to bother them in the desert.

 

Then we humans came along, the animals that wanted to conquer all of the Earth. Learning that we cannot survive by ourselves in the hot and dry lands, we decided to tame these desert creatures, in order to expand our frontiers. And we did. We formed communities and roamed the desert in search for water and pasture for our tamed beasts, who provided us with nourishment, transportation, and shelter. But maybe the camels were the ones that chose us as their companions, to fulfill their wish that we would learn their way–how to find peace in the deserted lands

 

White Desert, Egypt, Sahara 1_Digital Print_2012

White Desert, Egypt, Sahara 1_Digital Print_2012

Wadi Rum, Jordan, Arabian Desert 2_Digital Print_2012

Wadi Rum, Jordan, Arabian Desert 2_Digital Print_2012

Wadi Rum, Jordan, Arabian Desert 1_Digital Print_2011

Wadi Rum, Jordan, Arabian Desert 1_Digital Print_2011

Thar Desert, India 2_Digital Print_2013

Thar Desert, India 2_Digital Print_2013

Sahel, Mali, Sahara_Digital Print_2012

Sahel, Mali, Sahara_Digital Print_2012

Black Desert, Egypt, Sahara 1_Digital Print_2012

Black Desert, Egypt, Sahara 1_Digital Print_2012

Erg Chebbi, Morocco, Sahara 4_Digital Print_2013

Erg Chebbi, Morocco, Sahara 4_Digital Print_2013

Erg Chebbi, Morocco, Sahara 3_Digital Print_2013

Erg Chebbi, Morocco, Sahara 3_Digital Print_2013

Erg Chebbi, Morocco, Sahara 2_Digital Print_2013

Erg Chebbi, Morocco, Sahara 2_Digital Print_2013

Khongoryn Els, Mongolia, Gobi 1_Digital Print_2012

Khongoryn Els, Mongolia, Gobi 1_Digital Print_2012

규칙과 반복 속에 갇힌 일탈

명이식Myung Yi-Shik, 행담 201009, 180x225cm

규칙과 반복 속에 갇힌 일탈

규칙과 반복 속에 갇힌 일탈
명이식 Myung Yi-Shik
2014.03.06 – 03.25

규칙과 반복 속에 갇힌 일탈 최봉림 CHOI Bong-Lim (사진비평가. 작가) 명이식의 4×5인치 뷰카메라가 주목하는 것은 예외 없이 알루미늄 프레임과 유리를 사용하는 커튼 월 구조의 도심 빌딩과 조립식 콘크리트로 이뤄진 산업건축물이다. 건축의 효율성과 경제성을 위해 모듈공법이 동원됐으며, 그리고 완공 후에는 경제의 효율, 효율의 경제를 추구하는 건축물이다. 횡적 팽창과 더불어 높이의 성장을 거듭하는 메가시티, 신도시의 주역들이다. 그 건축물들이 지닌 규칙과 반복의 외관들이다. 최상의 지점과 시점 에서 작가는 엄정한 프레이밍을 통해 현대 건축물의 형태론의 특징을 명료하게 드러낸다. 작가의 사진적 프레이밍은 그의 재현대상, 즉 현대의 기능주의적 건축물의 특성과 일치한다. 뷰카메라의 무브먼트를 이용하여 완벽하게 수직과 수평의 건축선을 정열하고, 사진의 사각 프레임과 건축물의 그리드를 어긋남 없이 맞물리며, 재현대상을 본받아 3차원의 부조감 대신 2차원의 평면성을 강조한다. 작가는 그가 주목한 건축물과 사진적 재현의 간극을 최소화하는 프레이밍을 규칙적으로, 반복적으로 수행한다.

그렇다면 작가가 엄정하고 명확하게 사진으로 전환시키는 기능주의적 현대 건축물 안에는 무엇이 기입되고, 무엇이 투사되는가? 그것은 인간의 공간과 시간을 수리적으로 구획정리하고, 개인의 일탈을 체계적으로 억압하면서 경제성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기술관료 사회의 기표들이다. 인간의 노동, 사생활 그리고 여가를 규칙적으로 반복시키면서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소비조작 사회의 징후들이다. 다시 말해 획일성, 예측과 통제 가능한 일탈만의 허용, 끝없는 반복을 통해 생산과 소비를 고양시키는 현대사회의 상징symbol인 것이다. 명이식이 체계적으로 프레이밍한 대형 건축물 속에 내재된 현기증 나는 반복, 교차하는 직선들의 규칙적인 행렬은 최소 시간, 최대 이윤을 추구하는 글로벌 자본주의 사회의 쿨한 표상인 것이다. 기술관료 사회, 소비조작 사회는 이 건축물들을 통해 현대인의 노동을 조작, 관리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을 재단하고 배치한다. 현대 건축물은 일종의 강제성을 갖추고, 우리 삶 전체를 실용적으로, 기능적으로 재편성한다. 한편으로는 산업사회의 산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산업사회를 조직하는 것이다. 작가의 말을 들어보자. “내가 피사체로 선택한 대상들은 모두 대도시에 설치되고 놓인 구조물들이었다. 똑같은 구조, 육면체의 수평, 수직으로 연속된 반복, 원형의 무한반복은 현대사회의 삶과 닮아 있는 현대 도시의 필연성이다.”

명이식이 강조하는 현대 건축의 그리드 혹은 원형을 통한 반복구조는 일견 개인의 주체성과 모든 개인들의 평등을 승인하는 듯하지만, 그러나 이 승인은 언제나 명목적이다. 그리드로 개인의 개체성, 그리고 건축자재의 동일성, 크기와 형태의 동일성으로 완벽한 평등을 가장할 뿐이다. 실제로 반복구조는 차이, 더 나아가 차별,

그리고 대체를 전제로 한다. 동일하게 반복되는 구성요소는 다른 동일한 요소로 언제나 교체 가능하며, 동일한 구성요소는 그 위치, 즉 중심과 주변 그리고 높낮이, 즉 상층과 하층에 따라 계급과 직무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빌딩의 그리드 속에 갇힌 모든 개체는 직위, 직책을 막론하고 경제의 효율, 효율의 경제에 강제되어 있다는 점에서만 평등하다. 현대 건축물의 반복구조는 불평등의 은폐, 획일화이며, 경제논리에의 종속을 의미한다.

작가의 시트필름으로 전사된 건축물의 형태학에는 규칙을 깨뜨리는 우연, 반복에서 일탈하는 파격이 존재한다. 반복적 동일성이 주변 환경의 그림자에 의해, 빛의 반사에 의해, 떠가는 구름에 의해 혹은 시간의 파괴 작용에 의해 흐트러지는 순간들이 찍혀있다. 작가는 말한다. “피사체인 도시의 구조물들은 늘 그곳에 공존해왔던 주변 환경들을 묻히게 한다. 떠가는 구름과 빌딩 옆의 채 제거되지 않은 잡초들, 바람에 살랑이는 나뭇잎들과 빌딩에 비친 풍경과 얼룩들. 사진이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실제로 그곳에 ‘존재’하지만 ‘인지’하지 못하는 대상들이다 (…) 그래서 나는 의도적으로 기하학적 반복된 도시의 구조물들을 찍는다. 이들을 강조해서 찍으면 찍을수록 보이지 않던 아름다운 것들이 더욱 잘 드러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분명히 작가는 반복에 균열을 내는 우연과 일탈을 자신의 사진 속에서 ‘인지’하면서 미학적 기쁨을 맛본다. 그리하여 2007년 이후 지속적으로 그는 ‘도시의 구조물’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러나 작가의 객관적이고 중성적인 사진어법은 우리로 하여금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순간의 기쁨을 넘어서, 기술관료 사회의 억압적 효과를 지속적으로 ‘인지’시키고야 만다.

작가가 보여주는 건축물의 하위 구성물은 모두 상위단위 속에 일관되게 종속되며, 파격도 반복의 규칙 속에서 측정 가능하다. 무작위적인 장식, 예측을 벗어나는 일탈은 커튼월 구조와 모듈공법의 건축물에서는 곧 끝이 날 즉흥극에 지나지 않는다. 격자 유리창에 달라붙은 청소부, 수직으로 매달린 형상물, 블라인드의 각기 다른 높이, 창마다 상이한 빛의 반사율과 예측할 수 없는 주변 건물의 반영, 무작위적인 창문 색상의 배열, 노후 건축물의 불규칙한 칠 벗겨짐, 산업건설물의 일관성을 깨는 어수선한 건설 장비들은 기능주의적 건물 전체에 담보된 수학적 규칙을 깨트리는 일탈 같아 보이지만, 실은 일탈에 관계된 자유 혹은 저항이 아니다. 다양성, 탈중심이 아니다. 규칙과 반복의 지속 속에서 잠시, 때 아니게 일어나는 우연일 뿐이다. 조만간 동일한 규칙과 변화 없는 반복으로 되돌아올 유사성, 닮음일 뿐이다. 현대사회의 표준화된 패턴에 의도치 않게 생겨난, 그러나 지울 수 있는 얼룩일 뿐이다. 명이식의 사진에 일어나는 차이와 일탈은 시간이 지나면 또 다시 동일성, 획일성에 종속되고 말 운명에 놓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작가와 마찬가지로 이 정도의 사소한 일탈, 파격에서도 ‘아름다움’을 느낀다. 그래서 작가의 사진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 우리를 지배하는 규칙의 반복에서 잠시나마 벗어났다는 착각을 맛보기 위해, 반복의 규칙 속에 갇힌 일탈의 쾌감을 음미하기 위해서 말이다.

 

Deviation Locked in Regulation and Repetition CHOI Bong-Lim(photograph critic, artist)

Myung yi shick’s 4×5 inch-sized view camera focuses both downtown buildings with aluminum frame and curtain wall structure made of glass, and industrial ones built with prefabricated concrete. The Structures are built with construction method of module for efficiency and economy, which are also their ultimate purpose after completion. They are the core of mega-cities or newly constructed cities which expand without any limit. They all have appearance of regulation and repetition. On the highest vantage point, Myung clearly represents morphology of contemporary architectures with austere frames.  The frame of his photographs corresponds to the features of functional buildings of our times. He emphasizes two dimensional flatness by aligning horizontal and vertical lines completely with mechanical movement of the view camera and engaging the square frame of photographs with grid of the buildings. He repeats the frame regularly minimizing the gap between the photographic representation and the building itself.

What are transcribed on his strict photographs of contemporary functional structures? You can discover some significant of technocratic society which adjusts time and space mechanically, suppresses individual deviation and maximizes economical values. They are symptoms of consumption community which makes the members repeat labor and leisure like a clock for getting economical profits. They are symbols of dizzy contemporary life encouraging production and consumption with permission of a minimal controllable and expectable aberration of personal desire. Repeating structure of the huge buildings with systematic frame and matrix of crossing straight lines are the cool emblems of global capitalist society pursuing maximum profit and efficiency. Technocratic and consumption society not only controls manual and intellectual labor of our contemporaries but also rearrange our common lives. The buildings in which we work manage our whole lives functionally as well as practically with force. On the one hand they are the product of industrial society, on the other they construct the society. Myung says, “All subjects of my photographs are the buildings located in a mega-city. You can find similarity and necessity of contemporary city life in the monolithic structure and repetition of horizontal and vertical cubes.”

Grid and repetition of modern architectures can be read as equalitarianism, but they just pretend to permit the equality of individuals. Actually repetition needs difference, discrimination and replacement. Repeated component can be replaced with another one which has different location of central, peripheral, high or low class and role. Every single individual locked in grid of building is equal only in the meaning of efficiency of economy. Repeated structure of modern architectures conceals inequality, standardization and domination of economic logics. In the meanwhile, in architectural morphology transcribed on Myung’s sheet film, you can catch sight of coincidence breaking the rules and unconventionality deviated from repetition. He captures the moment when the repetition uniformity is distracted by shadows, reflection of light or floating clouds. He says, “The buildings of city covers all surroundings which have coexisted; those are floating clouds, overgrown weeds beside of building, dancing leaves with wind and landscapes reflected on the surface of building. I try to represent the objects which exist there but are not perceived at the first glance….I intend to take a picture of geometrical structure of city, in which the unseen beauty’s finally revealed.” He has enjoyed aesthetical discovery of coincidence and deviation behind regular repetition, which makes him immerse himself in the structure of city since 2007. His neutral photographs don’t stop making the audience realize the repressive effects of technocratic society even when they provide them an opportunity of being amused with instant beauty of insignificance.

All sub-components of the buildings he presents belong to their superordinate. A breakaway like random ornaments can be expected. A cleaning man clinging or advertisements on the glasses of grid, some blinds of different height, diverse reflection of lights and other buildings, a variety of windows’ colors, irregularly peeled-off paint from old buildings and construction equipments disorderedly laid around the buildings look a kind of aberration from an underlying mathematical rule at the first glance, but they are not resistance nor freedom any more. They don’t mean diversity nor decentralization. They are just an instant coincidence and spots which can be removed. They are doomed to belong to conformity. We, nevertheless, still stop and look into his works to enjoy a delusion of instant freedom or deviation from mechanical repeating system and standardized rules.

 

명이식Myung Yi-Shik, 남부 201110, 148x180cm

명이식Myung Yi-Shik, 남부 201110, 148x180cm

 

명이식Myung Yi-Shik, 반포 201209, 180x148cm

명이식Myung Yi-Shik, 반포 201209, 180x148cm

 

명이식Myung Yi-Shik, 아산 201209, 148x180cm

명이식Myung Yi-Shik, 아산 201209, 148x180cm

 

명이식Myung Yi-Shik, 종로 201108, 180x148cm

명이식Myung Yi-Shik, 종로 201108, 180x148cm

 

명이식Myung Yi-Shik, 종로 201208, 180x148cm

명이식Myung Yi-Shik, 종로 201208, 180x148cm

 

명이식Myung Yi-Shik, 청주 201209, 180x148cm

명이식Myung Yi-Shik, 청주 201209, 180x148cm

 

명이식Myung Yi-Shik, 한남 201007, 148x180cm

명이식Myung Yi-Shik, 한남 201007, 148x180cm

 

명이식Myung Yi-Shik, 행담 201009, 180x225cm

명이식Myung Yi-Shik, 행담 201009, 180x225cm

 

한국 근대사진과 현대사진의 만남 2 : 한국 아날로그사진의 현재

한국 근대사진과 현대사진의 만남 2 : 한국 아날로그사진의 현재

>   2014-01-10 ~ 2014-01-28 정해창, 구본창
>   2014-02-06 ~ 2014-03-04 서순삼, 민병헌 

2014년 트렁크갤러리는 이제 7주년을 맞는다.

앞만 바라보며 Contemporary Art 만으로 사진의 현재를 대변하겠다는 트렁크갤러리의 의지가, 오늘 여기에 이렇게 이르게 되었습니다. 지난 7년을 뒤돌아보면서 미술시장이 갖는 사진에 대한 편견과 몰이해에 도전하겠다는 그 의지의 미숙함에 스스로 부끄럽지만, 그 겁 없음으로서 오늘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아직 할 일들이 많아 기쁘게 생각한다. 2013년에 이어 “한국 근대사진과 현대사진의 만남”전, 그 두 번째 전시를 또 진행하게 되었다. “한국 아날로그사진의 현재”라는 소주제로 사진 3세대, 구본창과 민병헌의 아날로그 프린트 사진전을 기획하였다.

한국미술시장에서 아날로그사진의 컬렉션문화, 그 싸늘함의 원인을 잘 모르지만 그래도 그 이유를 찾아내 보려 한다.

그 간 “Contemporary Art”로의 사진과 우리시대의 PhotoArtist들에 대한 지지와 지원만이 관심이었던 트렁크갤러리가 아날로그 프린트의 소중함을 호소하고   새롭게 관심을 모아보기 위해서다. 급속한 사진산업의 디지털 프로세스화된 오늘, 아날로그로 프린트된 여러 작가들의 작품들에 대한 소중함을 새롭게 일깨워 내는 것도 트렁크갤러리의 할 일 같아서다.

사진선배들의 Photo Art Work을 재조명 한다는 것, 우리시대의 아날로그 PhotoArt Work들을 선보인다는 것, 다시 말해 우리의 사진1세대와 사진2세대를 거처 사진3세대로 불리는 작가 두 분의 작품, 아직도 아날로그작업을 꾸준히 해 온 바로 사진3세대 두 분의 Art Work을 자랑하며 1세대와 3세대의 만남 전을 하려 한다.

어제는 오늘의 표본이다. 어제 없이 오늘을 이루어 낼 수 없었다는 것 그 것은 너무 당연한 생각이다. 그 것은 1세대사진가들이 당대에 어떠한 상황에서 작업해 왔는가를 살피며, 이제 3세대는 그들과 어떻게 다른 사유체계 갖고 있는지를 살피며 그 차이들을 비교해 보는 계기가 되기도 할 것 같아서 이다. 이 차이의 비교는 오늘의 과제를 새롭게 받아들이는데 또 다른 창의력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들의 선배인 1세대들은 오늘에 비해 모든 것이 풍부하지 못하였지만 당대에 최대의 창의력 주체들 이였다. 부단한 노력으로 풍성하지는 못하나 극한 의 노력으로 해 낸 작업들일 것이다. 그런데 그 작품들이 제대로 보존되어지지 못해 겨우 일부만의 유작이 보존되어 있다는 것만을 다행으로 감사 할 뿐이며, 또 그 시대 창작활동이 어떠했나를 감지 해볼 수 있다. 그리고 지금도 미처 인식하지 못해 오늘의 컬렉션문화에서 소외 되어지고 있는 아날로그사진 그 Photo Art Work들을 자랑하고 싶다. 우리의 근대사가 복잡했었기에 1세대의 작업이 잘 보존되지 못 했음을 반성하며 아날로그사진들을 위한 보존의 소중함을 더더욱 강조하며 컬렉션문화에 새로운 과제, 바로 “한국 아날로그사진의 현재”가 바르게 소통되어지기를 희망 한다.

오늘 사진산업은 아날로그사진을 위한 모든 미디어들이 완벽하게 무너져 가고 있다. 필름도, 인화지도 그리고 약품들까지 그 생산이 미미하다. 우리들에게 오늘의 디지털이미지시대를 가능하게 한 바로 그 아날로그이미지로의 미디어들에 대해 감사와 예찬을 말 해 보지도 못한 체 묻혀버릴 것만 같아 트렁크갤러리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할 생각이다.

한국의 모던한 Photo Artwork들이 아직도 각 작가들의 Photo Box에서 깊은 잠을 자고 있다. 참으로 안타깝다. 세계적 옥션들에서는 아날로그사진의 컬렉션이 활발하다. 그런데 우리 미술시장의 컬렉터들은 잠잠하다. 이해가 부족해서 인지 반응이 너무 냉랭하다. 수공이미지로의 회화에 대응해 발명된 화학이미지로의 아날로그사진, 그에 대한 예찬이 있어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갈 길, 그 앞이 안보인다. “한국 아날로그사진의 현재”라는 전시는 그래서 또 다른 도전이 된다.

 

 

트렁크갤러리는 2013년 1월에 민충식과 현일영에 강운구와 주명덕을 조우 시켜내었다. 한국사진 1세대가 어떤 2세대를 배출 해 냈었나를 살폈던 것 이다.

이제 2014년 1월은 정해창과 구본창의 “정물”에 대한 사유의 비교와 작업의 형식차이를 살펴볼 수 있고, 2월은 서순삼과 민병헌의 ‘누드’에서도 역시 서로 다른 두 세대가 여성의 몸에 대하는 사유와 작업의 형식의 비교는 매우 흥미로울 것이다.

사진작품을 아직도 아날로그프린트를 고수하는 작가 구본창과 민병헌은 작업의 본질, 내용과 이미지로의 효과를 위해서 아날로그 인화지가 주는 그 깊은 맛을 포기할 수 없다고 고집한다. 이 작가가 작품을 통해 전하고 져 하는 ‘멋’을 그래서 더 자랑하고 싶다. 지금 오늘의 현실에서 너무나 귀한 아날로그사진. 그 컬렉션에 대한 바른 질문을 유도하려는 의도에서 이기도 하다.

트렁크갤러리 대표

2014 marks the seventh anniversary of Trunk Gallery.

We have reached this point based on our ever-forward-looking desire to represent photography as contemporary art. Looking back over the last seven years, I find my own desire to challenge prejudice and lack of understanding regarding photography in the art market a little ridiculous, but I think this lack of fear is what allowed us to get where we are today. Nonetheless, it seems we still have a lot to do, which makes me glad. We are now holding the second Encounters between Korean Modern and Contemporary Photography exhibition, following that of 2013. We have planned an exhibition of works by third-generation Korean photo artists Koo Bon-chang and Min Byung-hun on the theme, “Korean analogue photography in the present.” This exhibition is also partly aimed at discovering the reason for the glacial state of analogue photography collection in the Korean art market. Having regarded supporting photography as contemporary art, and contemporary photo artists, as our most pressing issue, it seems we should now take on a new challenge. We never aimed only to include digital work, but today, when the photography industry has become digitalised, it seems there is also a need to reawaken people to the value of printed works. We want to bring the works of these photographers back into the spotlight; introduce their analogue works; show how they constitute the third generation of Korean photo artists, following in the footsteps of the first and second generations; and create new awareness by showing the analogue works of this third generation.

The past is a sample of the present. To say that today could never have existed without yesterday is to state the obvious. Observing the circumstances in which the first generation of photo artists worked, then exploring the thought systems of the third generation, presents chances for comparison. I think comparing these differences will be extremely helpful in providing the creativity needed to embrace today’s challenges in new ways.

Though our predecessors, the first generation of Korean photo artists, did not enjoy the abundance that we do today, they were at the forefront of creativity in their time. Their works are the products of extremely hard effort in limited circumstances. Many of their works have not been preserved until now, however – we can only be thankful that at least some of them have survived, allowing us a sense of the kinds of creative activity in progress during their era. We want to show off these analogue photo artworks, still isolated from today’s collection culture through lack of awareness. Our hope is to raise a new issue, namely, that of Korean analogue photography in the present, while reflecting on the fact Korea’s complicated modern history has prevented proper preservation of the works of its first generation of photo artists.

In today’s photo industry, all media required for analogue photography are on the way to total collapse. Hardly any film, printing paper or chemicals are now produced. It seems these things, all of which enabled us to reach today’s age of digital imagery, are about to simply disappear before we have a chance to express our thanks and praise for them. Trunk Gallery will do its best to make sure that this does not happen.

Korea’s modern photo artworks are still hidden deep in the photo boxes of each artist. This is a real shame. Collectors are actively buying such works at international auction houses. Korean collectors, however, are not doing very much. Perhaps due to insufficient awareness, their reaction to photo artworks is frigid. As chemical images invented in response to hand-painted images, analogue photographs are worthy of praise in their own right; in spite of this, however, their future is uncertain. The theme “the present of Korean analogue photography,” then, presents a new challenge.

 

In January 2013, Trunk Gallery brought together photographers Min Chung-sik, Hyeon Il-yeong, Kang Un-gu and Ju Myeong-deok. This exhibition demonstrated the kind of second generation produced by Korea’s first generation of photographers. This year’s January exhibition compares the thought behind the still life works of Jung Hai-chang and Koo Bon-chang, offering a glimpse of their stylistic differences. The February exhibition introduces the nude works of Seo Sun-sam and Min Byung-hun, promising to offer a very interesting glimpse of the differences in thought behind the treatment of women’s bodies by artists of different generations.

Koo Bon-chang and Min Byung-hun, who still insist on producing analogue prints, are adamant that their deep flavours are needed to deliver the essence, content and effects of each image. This is what makes us all the more keen to show off the beauty that these artists attempt to convey through their works. In today’s reality, analogue photographs are more valuable than ever. We also want to prompt the right questions about collecting such works.

Trunk Gallery Park Youngsook

 

 

 

2014 / 01 정해창 : 구본창의 ‘정물’사진 조우
January, 2014 Jung Hai-chang: an encounter with the still life works of Koo Bon-chang

 

트렁크갤러리에서 2014년 1월전으로는 정해창의 “인형의꿈 (1),(2) ”그리고  “정물 (1),(2)를, 구본창의 “정물”시리즈를 조우시켜 내려 한다.

정물이란 본래 한 개인이 한 사물에 대한 사유에서 시작된다. 작가가 그 오브제에서 느끼게 되는 어떤 상징적 너레이티브를 읽어 내어, 그 이야기를 이미지로 표현 해 내고 싶은 충동이 곧 ‘정물’작업이다. 그 대상과의 사유에서 말 하지 않는 대상의 이야기를 들여다 보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또 다르게는 작가의 정신세계나 은밀한 내면세계를 반영하듯 그 작가와 작품이 등가적으로 느껴지는 은밀함이 정물사진의 큰 묘미로 흥미로운 지점이다. 우리민화들에서 활용되는 오브제들은 기원의 상징체계로 이미 깊게 자리 맥임 하고 있음도 미학적 관점에서 받아드릴 수 있어 ‘정물’작업의 본질을 읽게 한다.

예술사진 운동시대(1920~1940) 작가 정해창의 작업은우리문화가 온통 외래문화홍수에 허우적 거릴 사진을 통해서 진정 우리체질에 맞는 아름다움이 무엇인가를 실험하고 표현하려 애썼다. …ㅡ새롭게 태어난 근대작가 5인의 사진세계 한미출판 박주석 글에서

정해창인형의 은 그 시대의 불가능을 가능으로 읽어내려 한 정해창의 꿈, 그 것 이었다 싶다.

반면 구본창정물 시리즈는 그가 유럽유학시절 만났던 벼룩시장의 오브제들로 작가의 정서, 또는 그 감각반응을 읽어내게 한다. 작가 만의 내면세계, 그 비밀스러운 세계를 캐어 내 볼 수 있어 더욱 흥미로울 수 있어 즐겁다.

죽음 앞에 힘겨워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보며이라는 단어를 올렸다. 나는 사멸 밖에 없는 모든 것들을 기리며, 시리즈를 제작했다. 스페인 여행 벼룩시장에서 우연히 발견한 시계, 망가진 시계이지만 가냘픈 시계바늘이 시선을 끌었다. ㅡ작가노트에서

 

It its January 2014 exhibition, Trunk Gallery has brought together Jung Hai-chang’s Dream of the Doll (1) and (2) and Still Life (1) and (2) with Koo Bon-chang’s Still Life  series. A still life work normally begins with the thoughts of one individual regarding one object. Such a work is the product of an impulse to express, as an image, the symbolic narrative interpreted by the artist in the feelings an object gives her or him. While the thinking of some artists looks into the stories that unspeaking objects tell, another great charm of still life works is the intimacy whereby the artist and work feel equal, as if reflecting the spiritual or inner world of the artist. The objets that appear in Korean folk paintings are already established at a deep level in our symbolic systems; this enables them to be accepted from an aesthetic perspective and be interpreted as the essence of still life works.

The works of Jung Hai-chang, an artist in the age of the photo art movement (1920-1940), struggled to experiment with and express the kind of beauty best suited to the true Korean constitution, through photography, at a time when Korean culture was floundering in a flood of foreign culture. (From Park Ju-seok’s Portfolio of 5 Korean Modern Photographers in the Modern Era (Hanmi Press)).

Perhaps Jung Hai-chang’s Dream of the Doll was in fact the dream of Jung himself: a dream that interpreted that which was impossible in his era, as possible.

Koo Bon-chang’s Still Life series, on the other hand, allows us to interpret the artist’s emotions and sensory responses through objets he encountered in flea markets during his time studying abroad in Europe. Being able to penetrate the artist’s unique and secretive inner world makes his works all the more interesting and pleasurable.

Watching my father struggle as he faced death brought to my mind the word “breath.” I produced this series while praising all things that will inevitably become extinct. The watch I found by chance at a flea market in Spain was broken, but its feeble-looking hands caught by eye. (From the artist’s notes)

 

정해창, 뒷모습여인, 1995, Gelatin Silver Print

정해창, 뒷모습여인, 1995, Gelatin Silver Print

 

구본창, Breath 01, 1995, Gelatin Silver Print

구본창, Breath 01, 1995, Gelatin Silver Print

 

구본창, Object 07-1-C, 2004, Gelatin Silver Print

 

2014 / 02 서순삼 : 민병헌의  ‘누드’사진 조우
February, 2014 Seo Sun-sam: an encounter with the nudes of Min Byung-hun

서순삼 선생님은 1903년 생으로 1928년 평양사진조합을 창설하고 서울에 결성된 경성사지협회의 회원들과 교류를 활발히 했었다. 1930년에 평양에서 개인전을 한, 그는 정해창 다음으로 그 시대에 개인전을 한 작가였다.

많은 작품이 지금 보존 되어지지 못해, 다양한 작품을 없어 안타깝다. 릴리프기법 또는 고무인화기법, 브롬오일 인화들 다양한 사진기법적 실험을 많이 작가로 직업적으로는 저널리즘을 추구하였지만 예술사진에 많은 실험들을 기록이 남아있고, 그의 작품세계를 대변하는 이곳 저곳에서 발견되어 서순삼의 작품세계를 대변하고 있다.
ㅡ 새롭게 태어난 근대작가 5인의 사진세계 한미출판 박주석 글 중에서

서순삼의 ‘누드’와 민병헌의 ‘누드’ 그 조우는 또 다른 차원, 사진예술에 대한 그 맥락은 다양하다. ‘누드’란 남성사진가들이 제일 좋아하는 작품 소제이다. 여성을 대상화 한 오브제로의 전통 또한 회화에서나 사진에서 그 양상은 다양 하다.  여성의 몸이 벗겨진다는 것은 남성들에게는 섹스에 대한 호기심에 기초하여 발생하기에 그 형식도 서로 차이가 많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여성의 몸, 그 것, 몸이라고 하는 대상은 같지만 ‘Nude’ 와 ‘Naked’의 언어적 개념은 미학적 차이를 크게 다른 맥락으로 읽게 한다. “누드(Nude)”가 여성의 몸을 대상화 한, Sexuality와 관계 맺고 있다면. 옷을 벗은 ‘여체’ “Naked Bod”는 Sexuality 와 관계 맺기 보다는, 몸을 통한 성 정체성이거나 정신에 대한 육체를 말하려 하는 몸, 그 몸 담론의 장 으로의 기능하는 미학적 태도로 읽히게 하는 그 차이가 크다.

두 사진가 ‘서순삼’의 ‘누드’는 다분히 여체를 탐하는 남성의 시각이 분명한데 비해, ‘민병헌’의 ‘누드’는 여체의 조형성과 그 몸에서 묻어나는 표현의 수단, 몸을 통한 감성적 표현에 호소함이 더 강하다.

….민병헌의누드 신체가 아니라 피부가 중요하다. 피부가 대지처럼 펼처져 있거나 공기처럼 흐르고 있는 사이사이에 체모나 유두가 자리하고 있다. 섬세한 피부의 질감이 보이도록 톤을 조율했다ㅡ 열화당 출간 민병헌 책 박영택 글 중에서…

두 작가의 삶의 시대가 다르므로 여체에 대한 관심과 여체를 통해 표현되어짐의 그 차이가 우리들의 사유체계와 사유의 실체로 들어나, 그 다른 지점을 만날 수 있어 참 좋은 조우의 표본이었다. 두 작가 모두가 여성을 생각하는 방식, 그 여성의 몸을 다르게 읽는 차이에서 ‘Nude’ 와 ‘Naked’의 그 차이를 밝힐 수 있는 이 기회 또한 좋았다.

 

Born in 1903, Seo Sun-sam founded the Pyongyang Photography Association in 1928 and engaged in active exchange with the Gyeongseong Photography Association in Seoul. His solo exhibition in Pyongyang in 1930 made him the second artist of his generation, after Jung Hai-chang, to hold such an exhibition.

It is a shame that many works have not been preserved, leading to a loss of variety. [Seo was] an artist who experimented widely with techniques such as relief, gum prints and bromoil prints. Professionally, he pursued journalism but records remain of many experiments with photo art.… (From Portfolio of 5 Korean Modern Photographers in the Modern Era)

The meeting of Seo Sun-sam and Min Byung-hun’s nudes, in another respect, show various contexts with regard to photo art. Nudes are a favourite subject of male photographers. The tradition of the woman as an object comes in various forms, be they in paintings or photographs. To males, the removal of clothes from a woman’s body is something that happens based on sexual curiosity, leading to a wide variety of forms.

oday, however, the linguistic concepts of “nude” and “naked” cause big differences in contextual interpretation, despite the fact that they refer to the same object: the female body.  If the term “nude” is one that objectifies the female body and is related to sexuality, the “naked body” is more an expression of sexual identity through the body, or a body that aims to speak of the physical with regard to the spiritual; an aesthetic attitude that functions as a platform for this discourse of the body. The difference is significant.

While Seo Sun-sam’s nudes clearly show a male perspective that desires the female body, those of Min Byung-hun appeal more strongly to the formativeness of the female body, the means of expression it contains and the emotional expression that it conveys.

In the nudes of Min Byung-hun, it is not the body but the skin that counts. Body hairs or nipples stand between skin that unfolds like the earth or flows like the air. Min adjusts the tone so that the subtle texture of the skin is visible. (From Park Yeong-taek’s Min Byung-hun (Youlhwadang)).

The different ages in which these two artists live bring differences in their interests in the female body and in what they express through it; these differences, in turn, manifest themselves as differences in our own thought. The opportunity it provides to witness these differences makes this a very good sample encounter. It is also a good opportunity to discover the difference between “nude” and “naked” in the differences between the ways the two artists think of women and interpret their bodies.

민병헌, 74MG187 BHM, 2010, Gelatin Silver Print 서순삼, 누드, 1950년대, Gelatin Silver Pr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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